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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랜드》: 정착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by 1to3nbs 2025. 5. 7.

캠핑카 앞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긴 중년 여성 이미지
캠핑카 앞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긴 중년 여성 이미지

 

《노매드랜드》는 단순한 로드 무비가 아니다. 그것은 현대사회의 균열 속에서 미끄러지듯 경계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기록이며, 동시에 우리가 자주 외면하는 ‘존엄의 문제’에 대해 조용히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낡은 밴 하나를 집 삼아 끝없이 도로를 달리는 삶, 이방인 같은 존재들이 오히려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끌어안는 연대의 순간들 그리고 선택과 강요의 모호한 경계선. 이 영화는 말한다. 정착하지 못한 삶도 삶이며, 그것은 결코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떠돌게 된 사람들, 아니 떠돌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나는 혼자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원치 않게 혼자가 되었다. 회사는 구조조정을 시작했고, 나는 8년 동안 일하던 사무실 책상을 떠나야 했다. 서울 외곽의 원룸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희망보다 계산으로 가득했다. 다음 달 카드값, 다음 주 월세, 다음 식료품 예산. 《노매드랜드》의 주인공 펀 역시 원래는 정착된 삶을 살았다. 남편과 함께 공장 마을 엠파이어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고, 나름대로의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모든 기반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졌다. 공장이 문을 닫고 마을이 사라졌으며,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결국 차에 자신의 인생을 싣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떠난다’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그건 생존이다. 《노매드랜드》는 그 생존의 민낯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절망이나 자조로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하고 고요한 화면 속에 묘한 존엄과 회복력이 담겨 있다. 펀처럼 밴을 몰며 길 위에서 산 적은 없지만, 나 역시 안정된 삶에서 밀려난 경험이 있다. 퇴사 후 수입이 끊겼을 때, 보증금 인상 소식을 듣고 새로운 집을 알아보며 느꼈던 불안. 그 시기의 나는 물건을 정리하고, 소비를 줄이고, 내 삶의 기준들을 하나씩 바꿔가야 했다. 그건 의외로 많은 사람들에게 닥치는 일이기도 하다. 정착이 깨졌을 때,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이동을 준비한다. 나 역시 그랬다.

정주하지 않는 삶은 과연 실패일까?

우리는 오랫동안 한 가지 삶의 방식만을 ‘성공’이라 배워왔다. 좋은 직장, 아파트 분양, 자동차, 안정된 연금, 그리고 조용한 은퇴. 하지만 《노매드랜드》는 그런 틀 바깥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묻는다. “그렇지 않은 삶은 모두 실패인가요?” 펀은 길 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폐암을 앓으면서도 카약을 타는 걸 사랑한 스완키, 낡은 밴을 혼자 개조해 살아가는 린다 메이, 그리고 노매드들을 위한 공동체를 만든 밥 웰스. 이들은 각자의 이유로 ‘길 위의 삶’을 택했다. 그 누구도 “나는 노매드가 되고 싶었다”라고 말하진 않지만, 적어도 그 방식 안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간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 나는 ‘정해진 경로’에 큰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삶이 틀어지기 시작하자, 오히려 그 틀 바깥에 있는 방식들을 더 많이 보게 됐다. 프리랜서로 일하고, 집이 아닌 작업 공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삶의 루틴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생활. 그건 낭만이라기보다 필요였다. 《노매드랜드》는 이처럼 ‘다른 방식의 삶’이 반드시 비정상적이거나 실패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낯설지만 나름의 질서가 있는 그들의 삶은 우리에게 또 다른 선택지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연대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피어난다

길 위에서의 삶은 외롭다. 도시의 집 한 채에도 외로움이 스며들지만, 바람이 파고드는 차창과 말벗 하나 없는 밤은 차원이 다른 고독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길 위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더 쉽게 마음을 건넨다. 펀은 가는 곳마다 낯선 이들과 짧은 인연을 맺는다. 땔감을 나누고, 밥을 함께 먹고, 사막에서 울고 웃는다. 그 관계들은 오래 지속되지 않지만, 깊다. 그것은 어쩌면 ‘모두가 잃어본 사람들’이라는 공통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몇 년 전, 짧게 참여했던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가 떠오른다. 다들 사는 방식은 달랐지만,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감정은 비슷했다. 우리는 이름보다는 이야기를 나눴고, 직업보다는 오늘의 기분을 묻는 관계였다. 그 짧은 만남이 오래 남는 이유는 아마도, 진심이 쉽게 드러났기 때문일 것이다. 《노매드랜드》 속 노매드들의 연대 역시 그런 감정에서 비롯된다. 거창하진 않지만, 꼭 필요할 때 서로를 붙잡아주는 손길,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잊고 있던 공동체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잠재적 노마드다

《노매드랜드》는 미국 이야기지만, 그 안에서 나는 한국의 현실을 보았다. 매년 수십만 명이 계약 만료로 집을 옮기고, 수많은 자영업자가 불황에 문을 닫고, 비정규직과 플랫폼 노동자가 고용 불안을 겪고 있다. 우리 모두는 고정된 삶을 사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언제든 경계 바깥으로 밀려날 수 있는 잠재적 노매드들이다. 나의 삶도 그러했다. 큰 사건은 없었지만, 하나하나 작고 현실적인 문제들이 쌓이면서 ‘떠날 준비’가 생활화되었다. 지금 내가 사는 집도, 내가 하는 일도,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안다. 그래서 짐을 줄이고, 비용을 줄이며, 유연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이 영화를 본 뒤로, 나는 떠도는 삶을 더 이상 실패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만의 방식으로 질서를 세우고, 삶을 다시 구성해 나가는 능력이야말로 진짜 회복력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노매드랜드》는 떠도는 삶을 낭만도, 비극도 아닌 ‘현실’로 보여준다. 그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남고, 존엄을 지키며, 서로를 마주하는지를 잔잔하게 담아낸다. 나 역시 정착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고, 어쩌면 지금도 완전히 안착한 건 아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단순하다. 정착되지 않은 삶도, 실패가 아닌가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국 각자의 길 위에서 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