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은 고전 할리우드 영화 산업의 황금기와 몰락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예술과 탐욕의 경계에서 영화가 품은 빛과 그림자를 들여다봅니다.
황홀한 시작,《바빌론》의 도입부
《바빌론》은 1920년대 말 할리우드의 극적인 성장기와 함께, 영화산업이 어떻게 인간의 욕망과 결합해 초현실적인 세계를 만들어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영화는 거대한 파티 장면으로 시작하며, 관객을 당시 영화계의 황홀한 세계로 초대합니다. 여기서 제시되는 쾌락, 탐욕, 예술의 혼재는 당시 영화산업이 단순한 오락이 아닌 하나의 문화 권력체로 떠오르던 시기의 사회상을 반영합니다. 주인공 매니는 하인으로 시작하지만 영화산업에 대한 동경으로 점차 중심으로 나아가고, 넬리 역시 꿈만 같던 스타의 삶을 좇으며 환상 속으로 뛰어듭니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성공담이 아닙니다. 이들이 처음 접하는 화려한 무대는 곧 위선과 구조적 착취로 이어지며, 인간의 진짜 얼굴을 드러내는 공간이 됩니다. 특히 한 파티 장면에서는 카메라 뒤에서 일하는 이들의 피로와 불안, 착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한 영상 전공 지인은 영화계를 꿈꾸다 인턴 시절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바빌론》은 바로 그 현실을 화려함 속에 숨기지 않고, 오히려 그 모순을 전면에 드러냅니다. 1920년대 할리우드라는 배경은 단지 시대적 장치가 아니라,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어떻게 집단적으로 소비되고 파괴되는지를 상징하는 시공간입니다. 영화의 초반은 바로 그 욕망의 발화점을 현란하게, 그러나 차가운 시선으로 담아냅니다.
스타들의 몰락과 진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영화산업의 변화가 개인의 생존을 얼마나 가차 없이 흔들 수 있는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점입니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의 전환은 기술적 진보로 평가되지만, 이는 동시에 수많은 배우와 제작진에게 퇴장을 명령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잭 콘래드는 유성영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중의 외면을 받으며 점점 무너져갑니다. 넬리는 초기의 파격적인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았지만, 변화하는 미디어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면서 몰락의 길을 걷습니다. 이는 단지 스타 시스템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시대 변화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인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내 지인의 경우, 방송 작가로 활동하다가 유튜브와 OTT 플랫폼의 대두로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고 토로한 적 있습니다. 《바빌론》은 이처럼 화려함 뒤에 숨겨진 산업적 구조의 잔혹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영화 속에서 잦은 리테이크와 강도 높은 음향 녹음 요구로 인해 배우들이 심리적 한계에 도달하는 장면은, 영화가 예술이기 이전에 ‘시장’ 임을 보여주는 현실적 단면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은 상품처럼 교체 가능하며, 기억조차 되지 않는 존재로 전락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영화는 스타의 몰락을 개인의 실패로 보지 않고, 시스템의 무관심과 냉혹함으로 바라봅니다. 관객은 점차 잊혀지는 이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되고, 결국 이 영화는 ‘망각된 자들의 연대기’처럼 다가옵니다.
영화가 던지는 예술과 환상의 질문
《바빌론》의 후반부는 환상에 사로잡힌 인간이 결국 어떤 결말을 맞게 되는지를 철학적으로 조망합니다. 주인공 매니는 영화계의 중심에서 점점 멀어지고, 결국 스스로 영화계를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수년 뒤 그는 다시 영화관을 찾고, 한 편의 영화를 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립니다. 이 장면은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이중성을 함축합니다. 영화는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그 현실을 감당할 수 있는 감정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매니의 눈물은 영화가 주는 감동의 순수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산업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소모했는지를 기억하게 만듭니다. 한 친구는 영화 제작을 그만두고 일반 직장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주말마다 영화를 보며 감정의 균형을 찾는다고 말합니다. 《바빌론》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합니다. “당신은 여전히 영화를 사랑하는가?” 영화는 비록 허상일 수 있지만, 그 허상이 주는 감정은 진짜입니다. 셔젤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의 역사와 기술의 발전을 몽타주로 엮으며, 영화라는 매체가 시대와 함께 진화하는 거대한 생명체임을 암시합니다. 우리는 매번 새로운 영화를 보지만, 그 속에는 과거 수많은 영화인들의 흔적과 실패가 스며 있습니다. 《바빌론》은 예술과 산업, 감동과 착취, 사랑과 파괴라는 이중적 속성을 모두 껴안은 채, 영화라는 환상이 가진 위대함과 잔인함을 동시에 응시하게 만듭니다. 결국 우리는 영화가 던지는 진실과 거짓을 모두 받아들이며, 그 사이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결론:영화가 남긴 빛과 그림자
《바빌론》은 과거 할리우드의 흥망을 다룬 회고적인 영화인 동시에, 오늘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텍스트입니다. 영화는 예술과 산업, 감동과 착취, 찬란함과 몰락이라는 양극단의 요소들을 뒤섞으며, 영화 자체가 가진 이중성을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우리는 종종 영화관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만, 그 스크린 뒤에서는 무수한 이들이 사라져 갔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갑니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잊힌 존재들에게 조명을 비춥니다.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