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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계급 구조와 인간 본능의 시각적 재현

by 1to3nbs 2025. 5. 4.

눈 덮인 설국열차 외관 사진
눈 덮인 설국열차 외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눈보라 속을 달리는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인류의 생존 본능과 사회 구조, 계급 갈등을 날카롭게 그려낸 수작입니다. 단순한 SF 액션이 아니라,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 영화는 시각적 구성과 공간 설계를 통해 인간의 본능, 폭력성, 욕망을 계급 구조 안에 정교하게 배치합니다. 이 글에서는 《설국열차》가 공간을 어떻게 계급화하고, 그 안에서 인간 본능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재현했는지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열차라는 세계: 제한된 공간에 설계된 계급 피라미드

《설국열차》의 가장 상징적인 설정은 눈 덮인 종말 이후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생존 가능한 공간이 ‘열차’라는 점입니다. 이 열차는 폐쇄된 세계이며, 정지 없이 달려야만 유지되는 가상 생태계입니다. 그 안에서 인간은 철저하게 기능에 따라 분류되고 위치 지어집니다. 열차 맨 뒤 꼬리칸은 사회적 약자, 착취당하는 계층의 집합체이며, 맨 앞머리칸은 지배자 윌포드와 상류 계층이 존재합니다.

이 구조는 표면적으로는 수평이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수직적 위계로 작동합니다. 이 위계는 ‘이동’이라는 개념으로 강화됩니다. 주인공 커티스는 꼬리칸에서 시작해 한 칸씩 앞으로 나아가며 권력의 중심으로 접근합니다. 칸이 바뀔수록 그 공간은 점점 더 세련되고 넓어지며, 구성원들의 표정은 여유롭고 침착해집니다. 하지만 그 표면 아래에는 폭력과 조작, 통제라는 구조적 장치가 놓여 있습니다. 꼬리칸에서는 날것의 폭력이 드러나고, 머리칸으로 갈수록 폭력은 점점 ‘합리화’되고 ‘문명화’됩니다.

이러한 설정은 사회의 계급 피라미드 구조를 상징적으로 구현합니다. 가장 아래에서 몸으로 일하고 억압당하는 이들 위에, 점점 더 특권을 가진 계층이 누적되며, 가장 꼭대기에는 질서를 설계한 절대 권력이 존재합니다. 이 피라미드 구조는 현실 세계의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적 계급 분화, 국가 폭력 시스템을 은유합니다.

공간의 시각화: 색, 조명, 구도가 말하는 계급

《설국열차》는 단순히 계급을 서사적으로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매우 정밀하게 그 차이를 구성합니다. 각 칸마다의 색감, 조명, 소품, 인물 배치 등은 철저하게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꼬리칸은 어둡고 차갑습니다. 회색과 검은색이 주조를 이루며, 카메라는 종종 클로즈업이나 로우앵글로 인물을 찍어 극심한 밀도와 불편함을 전달합니다. 이곳은 말 그대로 ‘인간의 바닥’이며, 원초적 본능과 생존만이 남아 있는 공간입니다. 사람들은 뒤엉켜 있고, 질서가 없으며, 삶이란 곧 투쟁입니다.

반대로 중간 칸부터는 색감이 달라집니다. 식물로 가득한 온실 칸, 밝고 생기 넘치는 교실 칸, 유흥이 넘치는 클럽 칸은 마치 다른 세상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밝음은 가짜 평화이며, 구조에 대한 무지와 기득권의 안일함이 시각적으로 포장된 것에 불과합니다. 아이들에게 윌포드를 찬양하도록 세뇌하는 교실은 극 중 가장 아이러니한 장면으로, 총격전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노래가 계속 흘러나오는 연출은 위선과 세뇌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시각적 설계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서사입니다. 말보다 강한 색채, 화면 구도, 조명이 계급 간 불평등과 인간 감정의 밀도를 암시합니다. 상위 계급으로 갈수록 공간은 비고, 사람은 적어지고, 감정은 소거됩니다. 이 대비가 바로 ‘인간성의 박탈이 계급의 정점에서 일어난다’는 역설적 메시지를 던집니다.

인간 본능과 폭력: 억눌림의 연쇄 반응

영화 초반부에선 꼬리칸의 사람들이 음식을 배급받는 장면이 반복됩니다. 이 장면은 군대식 통제와 감시 체계를 상징하며, 인간의 기본 욕구마저 허락과 통제 하에 이뤄짐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억눌림은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고 폭력으로 분출됩니다. 커티스와 주민들은 도끼, 쇠막대기 같은 원시적 도구를 들고 전진하며, 이 폭력은 단순한 물리적 충돌을 넘어 계급 구조에 대한 집단적 저항으로 나타납니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하위 계층의 폭력은 감정적이고 혼란스럽지만, 상위 계층의 폭력은 체계적이고 냉정하다는 것입니다. 윌포드는 ‘시스템 유지를 위한 필연적 폭력’을 말하며, 인구 조절, 자원 분배,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살인을 정당화합니다. 그는 감정을 배제한 채 인간을 계산 가능한 부품처럼 다루며, 감정 없는 폭력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형태의 잔인함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결국 본능과 폭력은 인간 존재에 내재된 양면성입니다. 억제된 본능은 언젠가 폭발하게 마련이고, 그 폭발은 혼란을 야기하지만 때로는 구조를 뒤흔드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설국열차》는 이러한 인간 본능의 양가성을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날것으로 보여줍니다.

기계의 질서 vs 인간의 무질서 – 시스템에 맞선 존재의 선언

설국열차의 세계는 기계처럼 정확하게 돌아가야 유지되는 세계입니다. 온도, 속도, 자원, 인구 모두 계산되어야만 유지됩니다. 이 기계적 질서 안에서 인간은 감정을 소거당한 채 ‘역할’로만 기능합니다. 윌포드는 말합니다. “모든 부품은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커티스는 이 말에 맞서며 묻습니다. “그 부품이 ‘사람’이라면?”

결국 영화는 ‘질서냐, 자유냐’라는 고전적 질문을 던집니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성을 포기해야 한다면, 그 질서는 과연 정당한가? 커티스는 윌포드의 제안을 거절하고, 결국 열차를 파괴하는 선택을 암시합니다. 이는 파괴이자 재탄생의 메시지입니다. 기계적 구조를 해체하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가능성으로 나아가기 위한 상징적 파괴입니다.

이 파괴는 또 하나의 본능, 즉 존엄에 대한 욕망의 표현입니다. 생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사람답게 사는 것’에 대한 욕구는 인간 본능의 최종 단계입니다. 결국 이 영화는 생존을 넘어서 존재의 의미를 묻는 이야기이며, 시스템 안에서 침묵했던 감정과 본능이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결론: 인간은 언제든 ‘칸’을 부술 수 있는 존재다

《설국열차》는 단순한 액션 블록버스터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사회 구조, 계급, 통제, 본능, 윤리 등 복잡한 주제를 ‘기차’라는 공간 안에 정교하게 압축한 현대 사회의 은유입니다.

열차 속 구조는 현실의 사회 구조와 닮아 있으며, 인간의 감정, 욕망, 공포, 분노는 우리가 매일 살아가며 마주하는 감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칸에 살고 있는가?”
“그 칸은 우리가 선택한 것인가, 누군가 우리를 넣은 것인가?”

《설국열차》는 인간이 시스템의 부품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서 존엄하다는 사실을 강렬하고도 아름답게 시각화한 작품입니다. 우리가 이 구조를 인식하는 순간, 이미 우리는 칸의 문을 부수는 첫 발을 내디딘 것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