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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터널을 통해 바라 본 재난영화 속 시민과 국가의 대응

by 1to3nbs 2025. 3. 21.

재난영화는 단지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만 전달하는 장르가 아닙니다. 그 속에는 사회 구조의 민낯과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 그리고 시민 개개인의 생존 본능과 공동체 의식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영화 ‘터널’은 한국형 재난영화의 대표작으로, 붕괴된 터널 속 생존자와 터널 밖의 사회, 정부, 미디어의 모습을 통해 재난 상황에서의 ‘국가 vs 시민’의 대응 차이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 ‘터널’을 중심으로 시민과 국가의 대응 방식이 어떻게 다르게 그려졌는지 분석하고, 그 안에서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점들을 짚어봅니다.

 

영화 터널 사진

시민의 본능과 연대 – 생존을 위한 치열한 몸부림

영화 ‘터널’은 자동차 영업팀장 정수(하정우 분)가 터널 붕괴 사고에 갇히며 시작됩니다. 구조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35일. 그 긴 시간 동안 정수가 보여준 모습은 단순한 생존 본능을 넘어 인간다운 품위와 공동체 의식을 잃지 않으려는 ‘시민의 태도’를 상징합니다. 그는 한 병의 물, 딸을 위한 생일 케이크, 핸드폰 배터리 몇 퍼센트만으로 버텨야 했습니다. 특히 중간에 또 다른 생존자인 근로자 ‘김대경’을 발견한 후, 자신의 물을 나누고 생존 가능성을 고려하며 함께 살아가려는 선택을 합니다. 이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함께 살아야 한다’는 시민적 연대를 보여주는 대표적 장면입니다. 반면 구조 지연, 정부의 무관심, 언론의 상업적 보도는 정수를 외롭게 만들고, “정말로 나를 구하긴 하는 걸까?”라는 의문을 갖게 합니다. 터널 속 시민은 무기력하게 기다려야 하는 수동적 존재이면서도, 스스로의 판단과 결단을 통해 능동적으로 생존하려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영화는 이를 통해 재난 속 시민의 의지를 강조하며, 생존 그 이상의 존엄과 인간성을 말합니다.

정부와 공권력의 대응 – 무능, 계산, 이미지 관리

영화에서 가장 강렬하게 비판받는 대상은 ‘국가’입니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구조에 나서야 할 정부는 초기에는 빠르게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곧 이해관계와 정치적 계산에 얽혀 비효율적인 선택을 거듭합니다. 처음에는 대통령의 방문을 준비하며 현장 통제에 몰두하고, 구조 현장은 보여주기식 안전대책과 무의미한 회의로 가득합니다. “예산 문제 때문에 더는 못 팝니다”, “터널 옆 공사 시작해야 경제가 돌아갑니다”와 같은 대사는 정부가 한 개인의 생명보다 ‘시스템 유지’와 ‘경제 논리’를 우선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구조 책임자인 대책본부장(오달수 분)은 처음엔 헌신적인 인물처럼 보이다가 점점 현실 타협에 익숙해지는 모습을 보이며, ‘국가의 얼굴’이 어떤 방식으로 무뎌지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정부는 터널 안의 정수보다 터널 밖 언론, 여론, 정치 상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진정한 구조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의심을 자아냅니다.

시민과 국가는 왜 다른가 – 영화가 던지는 묵직한 질문

영화 ‘터널’이 가장 묵직하게 던지는 질문은 이겁니다. “한 사람의 생명은 국가에 어떤 의미인가?” 시민은 함께 살기 위해 자신을 나누고, 때로는 희생합니다. 반면 국가는 다수의 이익, 시스템의 효율성,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합니다. 이 괴리는 재난상황이 될수록 선명해지고, 영화는 이를 정면으로 드러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특정 정권이나 현실 정치만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대신 '국가라는 구조 자체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무능하거나 악의적인 정부가 아닌, 기능적으로 무감각한 시스템이 얼마나 한 사람을 쉽게 포기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영화는 미디어와 여론의 역할도 비판합니다. 초반에는 생존자 구조에 집중하다가, 구조 지연과 예산 문제가 불거지자 ‘정수도 책임이 있다’는 식의 보도가 이어집니다. 이것은 사회 전체가 위기에서 얼마나 쉽게 피로감과 무관심에 빠지는지를 말해줍니다. 결국 정수를 끝까지 지키는 것은 가족과 몇몇 구조대원, 그리고 터널 안의 그 자신의 의지뿐이었습니다. ‘터널’은 재난을 둘러싼 시민과 국가, 구조와 무기력, 희망과 현실 사이의 긴장감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단순한 극적 재미를 넘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터널’은 단순한 생존기나 감정 자극용 재난영화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다양한 재난 상황과 그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대응 방식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시민은 연대하고 버티지만, 국가는 종종 시스템에 갇혀 한 생명을 놓치곤 합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차이를 묵직하게 보여주며,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되묻습니다. 재난이 닥쳤을 때, 우리는 어떤 시민이 될 것이며, 국가는 어떤 얼굴을 보여야 할까요? '터널'은 그 질문에 대한 시작점이 될 수 있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