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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피겨스: 여성과 흑인의 이중 억압을 넘다

by 1to3nbs 2025. 5. 19.

 

영화 《히든 피겨스》는 흑인 여성 과학자들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겪은 차별과 도전을 통해, 인종과 성별이라는 이중의 억압을 이겨낸 실화 기반 이야기입니다. 단순한 영웅 서사를 넘어, 구조적 불평등과 편견 속에서도 능력과 존엄을 지켜낸 이들의 용기 있는 행보를 조명합니다. 이 리뷰에서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인물 중심으로 분석하며, 우리가 오늘날 어떤 관점으로 이 이야기를 바라봐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봅니다.

 

1960년대 NASA 사무실. 책상 앞에서 계산식을 정리하고 있는 흑인 여성 과학자 이미지

보이지 않던 사람들을 드러내다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는 미국 우주개발 경쟁이 치열하던 냉전 시대, NASA의 우주 프로젝트를 뒷받침한 흑인 여성 과학자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제목의 "히든"은 이들이 공적 기록과 사회적 인식에서 얼마나 배제되어 있었는지를 상징합니다. 주인공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은 각각 수학자, 프로그래머, 공학자로서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과 성차별은 이들의 존재조차 무시했습니다. 특히 여성이라는 이유, 그리고 흑인이라는 이유가 겹쳐져 이들은 직장 내에서 책상, 화장실, 회의 자리까지도 차별받는 이중의 억압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이 그 억압을 단순히 견디는 것이 아니라, 한계를 부수고 사회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과정까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줍니다. 세 명의 인물은 단지 소외된 존재가 아니라, 역사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그 누구보다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의 지성과 끈기, 그리고 인간적인 품격은 단순한 시대극을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도 강한 울림을 전합니다. 이 영화는 과거에 존재했던 인물들을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전히 소외된 존재들이 존재하는 지금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차별의 공간, 수치의 구조

영화는 직장 내에서 이들이 겪는 물리적, 심리적 분리를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캐서린은 백인 여성들과 다른 공간에 배치되고, 수학적 계산을 맡으면서도 결정적인 회의에는 참석조차 하지 못합니다. 매번 먼 거리에 있는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고, 커피포트 하나조차 "그들의 것"과 분리되어야 했습니다. 메리 잭슨은 기술자로 승진하기 위해 필요한 수업을 듣기 위해 백인 전용 학교에 소송을 걸어야 했고, 도로시 본은 IBM의 시스템을 누구보다 먼저 익히며 팀 전체를 이끌 능력이 있었지만 공식적인 직책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 모든 장면은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닌, 지금도 여러 형태로 반복되는 구조적 차별을 상징합니다. 물리적 장벽은 허물어졌을지 모르지만, 심리적 장벽은 여전히 많은 공간에서 존재합니다. 영화는 그것을 과장 없이 그러나 강하게 시청자에게 각인시킵니다. 차별은 법으로 금지되었더라도, 문화와 관습 속에서 은밀하게 이어질 수 있으며, 누군가는 여전히 화장실까지도 뛰어가야 하는 ‘심리적 거리’를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특히 영화는 이러한 차별이 단순히 개인적인 불편이나 감정적 상처를 넘어서, 시스템 전체가 능력을 가리는 구조로 작동함을 보여주며, 이 구조를 유지하는 무관심의 공모자들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선을 놓치지 않습니다.

도전을 넘는 연대와 능력

《히든 피겨스》는 개인의 영웅주의보다는 집단적 연대와 능력의 공유에 더 초점을 맞춥니다. 주인공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부당함에 맞서지만, 서로를 지지하고 협력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힘을 발휘합니다. 도로시가 IBM을 배우며 팀을 이끌 때, 메리는 법정에 서고, 캐서린은 정확한 궤도 계산으로 발사 성공을 이끕니다. 그들의 성취는 단순히 숫자와 공식을 잘 다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확장하고 동료들과 함께 변화를 일궈냈기 때문입니다. 특히 백인 상사인 해리슨(케빈 코스트너 분)이 차별적 구조를 조금씩 인식하고 변화를 선택하는 모습은, 차별 해소가 단지 소수자의 몫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인종과 성별의 벽은 개인의 노력과 공동체의 연대로 무너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은 누군가의 이름이 아닌 모두의 이름으로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NASA라는 상징적인 기관에서 결과를 통해 증명한 것은, 사회는 능력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해야 한다는 보편적 원칙이었고, 그 원칙을 실현시키는 데 있어 가장 큰 기여를 한 이들이 바로 오랫동안 숨겨졌던 여성과 흑인이었다는 점에서 영화는 단지 감동적인 이야기를 넘어 사회 정의의 실천을 스크린 위에 구현합니다.

과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히든 피겨스》는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영화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다양한 분야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차별은 형태를 바꿔가며 존재하고, 편견은 여전히 판단의 틀로 작용합니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차별은 과거의 문제’라는 안일한 시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캐서린, 메리, 도로시가 보여준 용기와 연대, 그리고 묵묵한 실력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방향을 다시 묻게 만듭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소수의 특별한 여성이 만든 기적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인간 존엄의 원칙이자 연대의 모델입니다. 그래서 《히든 피겨스》는 여전히 유효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기억해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재에도 우리는 ‘다양성’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도, 누가 그 다양성 안에 포함되고 배제되는지를 무심코 결정짓곤 합니다. 영화는 이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보이지 않던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단지 영화관 안에서 끝나지 않고, 각자의 일상 속에서 응답받아야 할 윤리적 요청으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