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83

《디 아메리칸》: 정적인 미장센이 만든 서사의 밀도 조지 클루니 주연의 영화 《디 아메리칸》은 총성과 추격전 대신 정적이고 절제된 미장센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스파이 액션물의 문법을 따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프레임의 고요함과 공간 구성만으로 인물의 고독과 긴장을 압축해 보여줍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이 영화가 어떻게 정적인 시각 언어를 통해 서사를 구축하는지 분석합니다.1. 움직임 없는 긴장감: 정적인 화면 속 불안의 감각영화의 시작부터 우리는 눈에 띄는 ‘정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카메라는 인물을 따라다니기보다 일정한 거리에서 고정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잭은 프레임의 중앙보다 구석에 배치되어 있으며, 그 주변에는 종종 여백이 가득합니다. 이러한 구도는 시각적으로 불안정을 표현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이 어떤 위협 속.. 2025. 5. 23.
영화 《듄》 사운드와 장엄함이 만든 신화(음향/세계관/서사)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듄》(Dune, 2021)은 프랭크 허버트의 고전 SF 소설을 바탕으로, 시청각 예술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신화’의 언어를 창조한 작품입니다. 단순한 SF 어드벤처를 넘어선 이 영화는, 압도적인 사운드 디자인과 미장센, 그리고 주인공 폴 아트레이드의 운명을 둘러싼 서사를 통해 우주의 질서와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이 글에서는 《듄》이 어떻게 사운드와 장엄한 이미지, 신화적 내러티브를 통해 고대적 전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는지를 분석합니다. 사운드가 먼저 도달하는 세계, 《듄》의 음향 미학《듄》은 시작부터 ‘보는 영화’가 아닌 ‘듣는 영화’입니다. 관객이 첫 장면을 보기 전에 이미 극장 안을 가득 메우는 중저음의 진동과 이국적인 리듬은, 이 작품이 단순.. 2025. 5. 22.
영화 "로마" 흑백 화면에 담긴 개인과 역사의 교차점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로마》(Roma, 2018)는 단순한 회고가 아닌, 기억을 통한 재현의 미학이자 한 시대의 정치적 불안과 여성의 존재를 교차시키는 깊이 있는 작품입니다. 1970년대 멕시코시티를 배경으로 하여, 중산층 가정의 가사노동자인 클레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감독의 자전적 시선과 계급적 현실이 중첩된 화면 언어로 가득합니다. 이 글에서는 흑백 화면이라는 선택이 전하는 정서적 뉘앙스, 클레오라는 인물이 관찰자에서 중심으로 이동하는 과정, 그리고 역사의 변곡점에서 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흡수되고 소멸되는지를 중심으로 《로마》를 분석합니다. 흑백의 미장센, 감정의 잔상을 남기다《로마》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흑백의 영상미입니다. 알폰소 쿠아론은 이 작품에서 컬러를.. 2025. 5. 21.
《트리 오브 라이프》: 시와 영화의 경계 테렌스 말릭 감독의 《트리 오브 라이프》는 일반적인 서사 구조에서 벗어나 인간 존재의 본질과 우주적 신비를 탐색하는 독특한 영화입니다. 감정의 언어, 이미지의 언어, 침묵의 언어가 혼재된 이 작품은 영화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시(詩)입니다. 이 글에서는 《트리 오브 라이프》가 영화와 시의 경계를 어떻게 넘나들며 관객의 내면을 울리는지 세 가지 시선으로 분석합니다. 1. 시처럼 흐르는 이미지의 조합《트리 오브 라이프》는 전통적인 플롯 구조와 극적인 긴장감을 의도적으로 해체하고, 그 자리에 이미지의 연속과 감정의 파편을 배치합니다. 영화의 서사 중심은 텍사스의 한 가정에서 자란 잭이라는 인물의 내면적 기억과 우주 창조, 생명의 기원, 죽음과 상실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병렬적으로 엮어내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그.. 2025. 5. 20.
히든 피겨스: 여성과 흑인의 이중 억압을 넘다 영화 《히든 피겨스》는 흑인 여성 과학자들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겪은 차별과 도전을 통해, 인종과 성별이라는 이중의 억압을 이겨낸 실화 기반 이야기입니다. 단순한 영웅 서사를 넘어, 구조적 불평등과 편견 속에서도 능력과 존엄을 지켜낸 이들의 용기 있는 행보를 조명합니다. 이 리뷰에서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인물 중심으로 분석하며, 우리가 오늘날 어떤 관점으로 이 이야기를 바라봐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봅니다. 보이지 않던 사람들을 드러내다《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는 미국 우주개발 경쟁이 치열하던 냉전 시대, NASA의 우주 프로젝트를 뒷받침한 흑인 여성 과학자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제목의 "히든"은 이들이 공적 기록과 사회적 인식에서 얼마나 배제되어 있었는지를 상징.. 2025. 5. 19.
《바빌론》 리뷰: 영화 산업의 빛과 그림자 《바빌론》은 고전 할리우드 영화 산업의 황금기와 몰락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예술과 탐욕의 경계에서 영화가 품은 빛과 그림자를 들여다봅니다. 황홀한 시작,《바빌론》의 도입부《바빌론》은 1920년대 말 할리우드의 극적인 성장기와 함께, 영화산업이 어떻게 인간의 욕망과 결합해 초현실적인 세계를 만들어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영화는 거대한 파티 장면으로 시작하며, 관객을 당시 영화계의 황홀한 세계로 초대합니다. 여기서 제시되는 쾌락, 탐욕, 예술의 혼재는 당시 영화산업이 단순한 오락이 아닌 하나의 문화 권력체로 떠오르던 시기의 사회상을 반영합니다. 주인공 매니는 하인으로 시작하지만 영화산업에 대한 동경으로 점차 중심으로 나아가고, 넬리 역시 꿈만 같던 스타의 삶을 좇으며 환상 속으로 뛰어듭니다. .. 2025. 5. 18.